[명언] 안중근 - 인으로 악에 대적한다

"약한 것으로 강한 것을 제거하고, 인(仁)으로 악(惡)에 대적한다"

- 안중근 (1879~1910)

안중근 대한의군 참모중장



천년나무의 생각 - 2021년 11월 27일의 회고

인(仁)으로 악(惡)에 대적한다.

안중근 의사가 옥중에서 쓴 글의 일부라고 한다. 대체 어떤 의미셨을까? 어떤 시대적 고찰과 조국의 광복을 위해 고단했던 그의 생에 겪은 경험, 얼마나 깊은 생각에서 나온 말일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문득 쉬는 동안 보게 된 어느 유튜브에 나온 “인(仁)으로 악(惡)에 대적한다”라는 구절을 보고 며칠 전 받았던 질문을 떠올린 건 왜일까… 상념에 사로잡혀 짧은 시간이나마 개인적 회고를 해 보았다.

며칠 전 카톡오픈채팅방에 올라온 질문. “QA로서 KPI를 어떻게 잡아야 할까요?” 라는 질문에 농담처럼 던진 말이 있다.

• 핵심 KPI : 올 해 이직하지 않기
• 주요 KPI : 잘 참기, 인내, 싸우지 않기 (경영, 기획, 개발, 인사, 팀장 등으로 쪼개면 7~8개까지 가능)

뒤늦게 저 질문에 대한 지적질을 하자면… 질문 자체가 좀 틀리긴 했었다. “QA로서”가 아니라 사실은 “Tester로서”가 되어야 올바른 질문이다. 이 글에서는 Tester로 쓰겠다.

필자가 저 답변을 했을 땐 그냥 다들 웃고 말았다. Tester들이 모인 채팅방에서는 저런 농담이 꽤나 잘 통한다. 다들 실제로 현실에서 겪는 일이기 때문에. 씁쓸한 현실. Tester들은 알 거다. Tester로서 회사에 근무하다 보면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언제라도 무시해도 되는 아랫사람’ 취급을 받는 경우가 많다. 물론 월급 주는 입장, 경영하는 입장에서는 월급 받는 사람들이 더 열심히 해 주었으면 하는 심정이 생기는 게 인지상정이겠으나… 어디에서부터 유래가 된 것인지 Tester들에게는 그냥 막말하고, 막 다루어도 되는 사람 취급하는 회사들이 참 많다. 특히, 아무런 권한도 주지 않고 테스트에 대한 책임을 묻거나, 프로세스 개선 의견을 묻는 바보 같은 현상이 계속된다.

여러 회사에서 여러 고생들을 하는 Tester들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듣고 있으면, 결국은 애자일 대유행 이후 시대에 Coding 위주로 경력을 쌓은 사람들이 권력을 잡고 Testing이라는 활동이 무엇인지 명확히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근본 문제인건데… 엉뚱한 사람들이 고난의 시대를 살고 있구나 싶다. 코딩이나 테스팅이나 결국 소프트웨어 개발 내의 업무들인데 뭐는 더 중요하고, 뭐는 덜 중요하다는 인식이 계속되고 있다. 유물론적관점의 계급 체계는 아직 없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전방위적으로 일어나고 있다고 보인다. 물론 모든 회사, 모든 부서, 모든 사람들이 그렇다는건 아니다. 결국은 모두 몇 몇 가해자인 어떤 어떤 사람들의 문제이겠으나, 일반적으로 이런 현상은 유독 많은 Tester들을 피해자로 많든다. 이야기들을 들어보면 참 많은 수의 Tester들이 동일하게 겪는 아픔이다.

필자의 예를 들어보자. 필자도 예전에 어느 회사 면접에서 그런 식의 폄하를 당한 적이 있는데, 면접 첫 질문이 “QA는 고등학생도 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였다. 해당 면접관은 그게 나름대로의 압박 질문이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필자 역시 몇 백명의 면접을 진행해본 경험에서 비추어보건대 그건 면접 첫 질문으로서 적절치도 않았을뿐더러… 당시 경력 10년이 넘었던 전문 지식 수준을 갖춘 사람에게 물어볼만한 질문도 아니었다. 더 웃긴 건 난 그 회사에 QA로 지원한 게 아니었다. 그 회사 내부 인원의 추천으로 Agile Coach 겸 PM으로 지원했지. 그 면접관은 지원자의 이력서도 안 읽어봤고, 그 지원자가 내부 Dev Leader의 추천인지도 모른 채로, 그냥 와서 ‘어, 얘 QA네’ 하고 무시하는 질문을 던진 거다. 내부 추천이라는 점만 알았어도 그렇게 예의 없는 태도로 예의 없는 질문을 하지는 않았을 거라 생각한다.

면접이 종료되고 그날 저녁 그 회사에 다니는 지인들과 술을 한 잔 하며 “아마 난 떨어진 거 같다” 하며 웃고, 회포를 풀고 집에 오는 길에 갑자기 그 질문이 곱씹어지면서 PTSD(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Post-traumatic Stress Disorder)가 생길 만큼 충격이 오고, 짜증이 나더라. 그래서 페이스북에 가볍게 투덜거리는 글을 올리고 잤다. 그러고 나서 자고 일어났더니 공유가 500회 이상되며 파주부터 제주도까지… 대한민국에 살고 계시는 여러 사람들에게 응원 메시지가 와 있더라. 그 일을 키운 것은 어느 유명 사이트의 커뮤니티 리더였다. 그는 꽤 유명한 사람이었는데 그날 술에 취했었는지, 내 글을 공유하며 해당 회사의 인사팀에 멘션으로 문의를 넣으면서 일이 일파만파 커져 있었다. 필자는 별로 큰 문제를 일으킬 생각은 없었어서 바로 비공개로 바꿨지만, 일은 너무 커진 상태였다. (하지만 Tester 커뮤니티에는 그 회사 불매하자고 글을 썼다. 그 질문은 필자 개인의 문제라고 볼 수 없었으니까.)

나중에 지인을 통해 그 면접관이 내부 게시판에 나름대로 해명한 걸 보게 되었는데 요약하면 그냥 이런 식의 답변이었다. “(필자가) 싸가지가 없었다.” 란다. 하하… 뭐… 그래… 그렇게 느꼈을 수 있다. 느낌은 개인의 것이니까. 자, 그래, 그렇다 치고, 개인의 느낌은 인정한다 치고. 가해자는 어떨지 몰라도 피해자 입장에서는 당시의 기억이 트라우마처럼 또렷하게 나기 때문에 이 기회를 빌어 굳이 할 필요 없는 불필요한 해명을 내려놓자면… 당시에 필자는 면접장에 15분 먼저 도착해 있었고, 면접 시간 5분이 지나서야 면접관 세 명이 들어왔다. 면접실 문이 열리고 덩치가 좀 있으신 분이 맨 앞에 서서 들어오셨고, 필자는 당연히 일어나서 인사를 했다. 그랬더니 그중에 제일 키가 조그마한 사람이 앉으라고 해서 대답을 하고 앉았다. 자기소개를 해 보란다. 그래서 했다. 그리고 첫 질문이 바로… 그것이었다. 우리 직군 전체를 싸잡아 폄하하는 발언.

지난 일은 지난 일이다. 상처는 남아 욱신거리지만 감정이 남아 있지는 않다. 불매운동 개뿔, 지금은 그 회사에서 물건도 잘 구입한다. 상처가 남아 잊히진 않지만, 스스로 잘 극복했다고 믿는다. 근데 난 지금도 그 면접관을 보게 되면 두 가지를 확인하고 싶다. 대체 어떻게 하면 처음 보는 사람이 정중히 인사하는 과정에서 싸가지 없음을 느낄 수 있는가? 본인이 한 번 시연해 보시라. 두 번 째는, 이력서도 제대로 읽어보지 않은 상태에서 대체 누구한테 레퍼런스 체크를 하고선, 그 선입견을 가지고 면접에 들어온 것인가? 누구에게 물었는지를 알고 싶은 게 아니라, 지원자의 이력서도 안 읽고선 그저 그 이력서에 아는 지인이 다녔던 회사가 보이니 냅다 레퍼런스 체크를 하고, 선입견을 가지고 면접에 응하는 사람이 어떻게 채용 담당자로서 일을 하고자 하는가에 대한 개인의 소견을 좀 들어 보고 싶다. 본인에게 직업 의식이란 무엇인가?

필자의 이런 경험, 이런 건 그냥 단편적인 사례 중 하나이고, 워낙 잘 알려진 이야기라서 공개할 수 있는 거다. 그 동안 보아온 필자가 겪은 경험담, 필자의 팀원들이 겪는 걸 본 목격담들도 많다. Tester로 살다 보면 굉장히 많은 편견과 무시를 당연히 받아들이고 살아야 한다. 아마 Tester들 몇 명 모아놓고 술 한 잔 하며 구체적인 사례를 하나씩 나열하다 보면 아마 성경책 두께의 책이 몇 권 나올거다. 그것도 굉장히 비슷한 패턴으로…

누군가는 말한다. “QA 하는 애들은 피해의식에 절어 있다.” 그래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누군가는 우리가 하는 말들이 ‘피해의식’이 라고 치부해 버리고 싶은 정도의 가벼운 투정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근데 필자는 Tester 커뮤니티의 운영자로서 여러 사람들에게 고민 상담을 듣거나, 이력서를 리뷰해 주곤 하는데…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자연스러운 Tester 차별과 폄하 언행들은 어느 회사 한 두 군데에서 발생하는 일은 아니다. 업계에서 전반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현상이다.

그 모든 것은 결국 경영, 인사, Dev Leader들의 Software Engineering에 대한 이해와 Software Testing에 대한 이해의 관점 문제로 귀결된다. 그리고 그렇게 Tester들에게 영향을 주는 모든 사람들이 제대로 된 마인드셋을 가진 회사는 정말 드물다. 그러니, 업계의 동료, 후배님들 모두 인(仁)으로 악(惡)에 대적하라는 안중근 의사의 말씀을 기억하며 스트레스 많이 받지 마시고, 긍정적이고 행복하게, 그리고 지혜롭게 해결하시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