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斷想】 리더가 감싸줘야 할 「그릇」에 대하여

그릇의 크기에 대한 깨달음

이 세상 거의 모든 사람들은 자기 직업에 진심일 거다.
누구나 더 잘하고 싶고, 더 인정 받고 싶고, 자신의 기여도를 확인받고 싶어한다.
어제보다 나은 오늘의 자신을 발견하면 누구나 기쁘다.
그건 너무나도 당연한 인간의 ‘존재 확인의 욕구’에서 기인할 것이다.

모든 사람은 다르게 생겼다.
누구는 키가 크고, 누구는 작다. 손의 크기, 발의 크기, 얼굴 생김새의 크기도 제각각이다.
그렇듯 모든 이들에게는 능력의 그릇, 마음의 그릇, 행복의 그릇 등 타고난 그릇의 크기가 제 각각이다.
능력은 출중하나 마음의 여유가 없는 경우도 있고, 능력은 부족하나 현재에 만족하며 행복한 경우도 있다.
늘 행복하지만 여유가 없는 사람도 있고, 마음이 편해서 욕심 없이 사는 이들도 있다.
또 어떤 이는 가끔은 본인이 바라는 행복함을 향한 열망의 그릇이 너무 커서,
그 욕망을 채우기 위해 자기 자신의 작은 그릇을 깨뜨리고 나아가 더 큰 그릇이 되기도 하더라.

그런 한계를 돌파하는 건 리더와 팔로워 간 상호 존중, 믿음, 사랑/우정으로 이룰 수 있지만,
여러 차례해 보니 결과적으로 그 모든 것은 누가 이끌어 주어야만 달성할 수 있는 경지가 아니었다.
그건 각 개인의 노력과 인생의 운과, 그런 점들에 영향 받아 얻게되는 깨달음에 달려 있다는게 최종적인 결론이었다.
개인의 노력이 있다고 해도 인생의 운이 따라 주지 않으면 깨달음을 얻을 수 없고,
깨달음이 없는 상태에서는 본인의 그릇이라는 ‘알’을 깨뜨리고 나올 수 없다는게 나의 결론이었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곧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라고 한다. (데미안, 헤르만 헤세)

그릇은 세상이고, 자신의 세상을 깨고 나오면 새로운 세상, 새로운 시야가 펼쳐진다.
그러나, 이 세상 모든이의 그릇은 크기만이 아니라 모양도 다르므로,
누군가가 자신의 세상에 살고 있고, 누군가가 어떤 세상을 깨고 나오지 못한다고 해서
비난하거나 조롱할 거리는 아니다.

누군가가 자신과 맞지 않으면, 안 보면 된다.
하지만 리더는 그들을 품고, 감싸주어 조직의 번영에 기여해야 한다.
항상 그런 지점에서 고민이 시작되곤 한다.


그릇의 크기에 대한 깨달음

리더의 입장에서는 여러 직원들과 함께 사업의 성공을 함께 해야 한다.
리더들은 이런-저런 전략들을 수립하고, 또 실행하여 사업에 이바지하기 위해서 노력한다.
그래서 각 직원들을 잘 교육시키고, 바르게 이끌어야 하지만,
또 동시에 각 직원들의 한계를 명확히 인지해야 한다.

아무리 열정적인 직원이라도 그의 타고난 그릇의 크기를 다른 사람이 바꾸는 건 불가능하다.
오직 자기 자신만이 자신의 그릇을 깨뜨리고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러니 각 개인이 스스로 깨닫는 한계까지만 교육으로 발전시킬 수 있음을 인정하되…
그 이상은 바라지 않고, 각 개인이 가진 그릇의 생김새 그대로를 받아들여 조직의 업무에 녹여 넣는 것.
거기까지가 리더의 역할이다.

거기까지가 리더의 역할임을 깨닫고 자연스러워짐은 위 글을 쓴 뒤로부터 한 2년 쯤 뒤였던거 같다.
이를 머리가 아닌 몸에 익혀 체화(體化)하는 시간이 약 2년 정도 걸린거 같다.

이런 생각들이 몸에 붙어 당연해지고 나니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무리한 것을 요구하지 않게 되고,
또 업무 중에 쓸데 없는 짜증이 잘 나지 않고,
나 스스로 욕심도 많이 버리게 되는거 같다.

그렇게 난 아주 조금 더 행복해졌다.


어느 비오는 봄 날,
문득 점심 시간에 페이스북을 들여다보다가 나타난 예전 글에 떠오른 짧은 생각,
끝.



< 그림 출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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