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斷想] 애자일의 명사화

필자의 블로그 중 다른 글인 「2021년-나의-품질-인생에-대해-다시-생각하다」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필자는 애자일 개발이 한국에 퍼져 유행하기 전에 이미 굉장히 애자일한 방식으로 개발하는 분들을 경험한 적이 있다. 그렇게 2000년대 초반, 한국의 애자일 1세대들은 자신들이 애자일 하게 개발하고 있는지도 몰랐는데 어느 날 자신들의 행동이 애자일한 개발이라는 걸 깨달은 세대라고 필자는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후에 필자처럼 대유행이 불기 전 애자일 개발을 받아들인 세대들은 그 정체와 근본을 파악하려 했고, 필자처럼 어느 정도 파악하고 나서 ‘별거 없네’ 하고 떠난 사람들, ‘이 좋은 걸로 증명하겠어’라며 실천하는 사람들, 그리고 다른 이들에게 ‘이 좋은 것’ 알리려 긴 여정을 시작한 사람들로 나뉜 듯 보인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그 과정에서 뭐가 잘 못 되었는지, 최근의 애자일은 “애자일을 한다”라고 ‘명사화(noun-化)’ 되어 있고, 이제 “우리는 애자일 해요”라는 표현은 “우리는 뭔가 Cool한 새로운 짓거리를 하고 있어” 정도의 마케팅 용어가 되어 버렸다. “애자일 개발(Agile Development)”이라는 문구에서 사용하는 ‘기민한(Agile)’으로서 사용되던 형용사 표현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그 기민한 형용사, Agile은 어디로 갔을까?

형용사가 사라진 자리에 자리매김한 뒤 자체적인 의미를 가진 대명사가 된 애자일은 어쩌면 그 자체로 기복 신앙이 되어 버렸을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애자일을 하고 있으니 우리에겐 복이 올 거야, 다 잘 될 거야….”라는 심정으로 매일 아침 필요도 없는 스크럼 회의를 하는 경우, 어느 종교의 매주 주일을 지키는 심정으로 일정 기간이 되면 회고를 하는 경우 등이 그 기복 신앙의 증거라 할 수 있겠다.

너무 비꼬듯이 표현했지만, 사실 이유가 있다. “애자일을 하면 개발이 잘 돼요, 모든 건 폭포수 잘못이에요”라는 얼토당토않은 말들을 하는 애자일 전파자들이 참 많아서 그렇다. 그럴리가 있나? (한국에서 폭포수를 제대로 한 곳이 없는데…) 필자는 그렇게 생각한다. 방법론이란 걸 잘 몰랐을 때 개발을 좀 못하고, 무능하다 소리 듣는 건 괜찮다고 본다. 그런데, 과거 자신의 무능력함을 ‘폭포수’라는 멀쩡한 방법론에 책임을 전가하는 건 진짜 나쁜 행위다.

최근 몇 달간 애자일의 ‘애’ 혹은 ‘A’ 자도 꺼내지 않은 채, 그냥 필자 스스로 굉장히 애자일 하게 ‘형용사처럼…!’ 일을 하고 있다. 팀의 특성상 주니어들이 많아 보여주고 싶은 것도 좀 있는데, 거창하게 애자일 개발이 뭐니, 어쩌니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 필자의 행위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 쪽은 확실히 주니어들로 보인다. 자기들이 어떻게 일하고 있는지 명확히 모르는 상태에서 필자 행동 양식 몇 가지를 따라 하는 모습을 보인다. 신기하다. 과연 이론적인 소양을 전혀 제공하지 않고, 행위로만 교육하는 게 가능할지 궁금한다. 실험을 하기에 적합한 구조의 조직이다. 지금 조직은 이걸 실험해 보기에 괜찮다. 실험은 계속된다. 쭈욱.

※ 현 시점에서 필자 결론 : 일은 그냥 잘 하는게 맞는거다. 애자일이니, 어른자일이니, 이런 방법론이니 뭐니 하는 괜한 수식어는 불필요하다. 거추장 스럽다.


이 포스팅은 2020년 1월 8일이라고 기록된 필자의 페이스북 담벼락에서 발견된 자료이므로, 해당 날짜로 포스팅했습니다.


천년나무의 생각 - 2022년 1월 8일의 회고

페이스북에서 가끔 ‘과거의 오늘’ 메뉴를 켜고, 이전의 나는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았는가를 들여다보곤 한다. 과거 1월 8일에는 생각이 많았나 보다. 글들이 잔뜩 있다. 아무래도 해가 바뀌고 했다 보니 이런저런 잡생각들이 많았겠지 싶다. 사실 필자의 이 생각은 Dave Thomas라는 전문가가 어떤 강연에서 했던 말을 필자의 경험과 더불어 정리한 걸로 보인다. Dave Thomas는 실용주의 프로그래머 (The Pragmatic Programmer)의 저자이다.

혹시 이 글을 보는 사람 중 Dave Thomas에 대해 더 알고 싶은 분들은 위 사진을 클릭하거나, 아래 링크를 클릭하시면 되겠다.

필자는 사실 그의 많은 블로그 글들과 강연들을 좋아한다. 어릴 적 필자가 재미있게 읽었던 책들을 쓰셨던 살아 있는 전설적 전문가 중 한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중 필자가 좋아라 하는 강연을 하나 공유한다. 그는 이 강연에게 “애자일의 4대 원칙”은 자신이 만들었으며, 자신은 “테스트 전문가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한다. 필자는 이 강연을 보면서 키득 키득대며 봤다. 그동안 쌓인 게 꽤 많으셨구나 싶었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