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그런 이야기
사실 “블로그를 다시 정리하자” 마음먹은 건 2017년이었다.
필자의 현재 블로그 아래쪽 CopyRight 부분에 1997년부터라고 쓰여 있는 바와 같이 필자는 HTML 3.0 시대에 웹개발을 공부하기 시작했고, 때는 1996년 가을이었다. 이후 Dynamic HTML이라는 HTML 기술이 흥할 때 처음 개인 홈페이지를 만들었고, 1997년에 HTML 4.0 스펙이 발표되었을 때 개인 홈페이지를 개설하였다.
처음 웹개발을 시작하고 신나서 개발했던 방명록 게시판은 이런 모양이었다. 당시에 유행하던 「제로보드」를 사용해서 게시판의 겉모양을 모두 숨겨버리고, 이런 식의 레이아웃을 개발해서 사용했었다. 아래쪽 네모네모한 부분이 사람들이 남긴 방명록 글이 보이는 장소.
당시에는 인터넷을 사용하는 인구도 많지 않고 하다 보니 블로그라는 건 그냥 필자의 개인적인 이야기, 20대의 감수성 젖은 감상, 그냥 평이한 일기 같은 이야기들, 투덜거림, 짝사랑이나 그리움 같은 것들이나 남기는 곳이었다. 그리고 지인들 중에 찾아와 글을 남겨주면 함께 수다 떠는 장소였고.
현재는 ‘카카오’인 ‘다음’이 「태터툴즈」를 인수했을 때 제로보드를 버리고 모든 데이터를 마이그레이션 해서 티스토리로 옮기기도 했고, 그렇게 여러 차례 모양을 바꿔가며 개인 데이터를 쌓아갔다. 특히 Testing과 QA에 관련한 이야기들은 필자 경력 초반의 시작부터 기록해갔다. 필자가 그 업을 대하며 무엇을 어디에서부터 고민했는지를 잘 정리해두면, 나중에 누군가 비슷한 고민을 시작할 때 도움이 되리라 믿었기 때문에.
글쓰기를 멈추게 된 과거의 변곡점 1번
그리고 거기에서 첫 번째 변곡점이 생겼다. 지금도 남의 블로그 글을 베끼거나, 훔치는 게 흔하지만 당시에는 필자도 젊은 혈기에 열정만 넘쳐나던 시기라 특별해지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 굉장히 컸다. 그런데 필자의 경험을, 그 글들을 훔쳐다가 강의를 하고 자기가 쓴 글처럼 변경해서 게시하는 걸 몇 번 목격하게 됐다. 그러고 나서 변화되어 버린 글쓰기 패턴은 지금 보면 좀 부끄럽다. 일부러 잘 못 알아듣게 쓴 글, 일부러 어렵게 쓴 글, 일부러 고고한 철학을 가진 척하면서 쓴 글들이 이후 몇 년간 썼던 글들이다. 그런 식으로 뭔가를 감추면서 글을 쓰니까 글 쓰는게 재미가 없어져버렸었다.
그래… 그게 있었구나. 말 터진 김에 그 이야기 하나 하고 가야겠다. 그때… 흐흐… 지금 생각해보면 웃긴 건데… 애자일 개발이 한국에 본격적으로 등장하고 필자가 관심을 가지고 들이 파기 시작했던 게 2006년 즈음인데, 필자 역시 당시에는 종교처럼 빠져서 무지막지하게 공부하면서 기존의 방식과 접목하여 뭔가 새로운 방식을 창조해 내려 애썼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을 블로그에 담기 시작했는데, 어느 날 애자일 개발 관련한 세미나 같은 곳에서 필자의 방식과 비슷한 이야기들을 한다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 그 발표자의 블로그에 들어가 보니, 마치 무슨 누구의 논문이라도 참고하고선 주석을 안 달아 놓은 것 같은 느낌의 글들… 필자 관점에서 보기엔 필자가 했던 이야기 중에 특정 부분을 잡아서 마치 자기 이야기인 거처럼 소프트웨어 품질관리 이야기들을 자신의 애자일 개발 철학과 접목해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마치 자신이 해본 거처럼, 자신의 아이디어인 거처럼. 당연히 필자의 이야기는 언급조차 없었다. 당연히 기분이 나빴다. 그래서 필자는 그 이후로 애자일 개발과 품질관리 관련 이야기들을 필자의 메모장에만 기록하고, 단 한 번도 온라인 상에 꺼내놓지 않았다. (지금도 쓸모없는 이야깃거리들이 노트 속에 잔뜩 쌓여있다.) 그런데 말입니다, 너무나도 우연이겠지만, 그냥 필자의 기분이겠지만 말입니다… 필자가 블로그에 글 게재를 멈춘 시점부터 그 애자일 전문가의 블로그에서 품질관리 관련된 글들이 보이지 않더라. 푸하. 필자 스스로도 그냥 혼자만의 착각이겠지 하면서도 그게 되게 웃기다. 왜 갑자기 몇 달간 쓰던 애자일 개발에서의 품질관리 이야기가 쏙 들어간 걸까? 아마 그 사람 스스로만 알겠지. 필자의 착각이겠지.
글쓰기를 멈추게 된 과거의 변곡점 2번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블로그 글을 본격적으로 쓰지 않게 되었던 두 번째 변곡점은 2015년 어느 날 찬 바람이 불고, 갑자기 기온차가 많이 나서 집에 가서 샤워하고 바로 따뜻한 옷을 입어야 했던 환절기 즈음 언젠가였다. 필자의 20대와 30대 초중반까지는 지나치게 오버해서 열정적으로 살았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스스로의 콤플렉스 때문인지, 아니면 어릴 적 가져보지 못해 아쉬웠던 짝사랑의 빈 공간을 충족시키고 싶었던 것인지, 아니면 무슨 대단한 능력자라는 소리라도 듣고 싶었던 것인지 모르겠으나… 그렇게 죽어라고 책을 읽고, 강의에 찾아다니며 공부하고, 스스로 연구하고, 사람들을 만나 토론을 했었는데… 전혀 그렇게 살지 않고 있는 사람들이 모인 회사에 가서 1년 반 정도를 겪고 나니 ‘내가 지금 왜 이러고 있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열정적으로 살지 않아도 잘 살 수 있음을 어느 날 불현듯 갑자기 깨달아 버렸다. 그래서 ‘나도 한 번 놀아 보자’ 싶었다.
단순히 블로그에 글쓰기만 멈춘 게 아니었다. 집에 도착하면 무조건 TV 앞으로 가서 일단 TV를 켰다. 이불을 하나 꺼내 들고 거실에 앉아 TV를 보기 시작했다. 한 2주쯤 지났을 때 또 깨달았다. 지난 2주간 디스커버리 같은 다큐멘터리만 보고 있었음을. 필자는 결국 또 그런 것에만 재미를 느끼고 있었음을. 그리고 TV를 보던 중 의식하지도 못한 어느새 전화기를 들고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내용을 찾아 또 공부를 하고 있음을. ‘아, 안 되겠다’ 싶어 그다음부터는 TV를 볼 때 핸드폰도 방에 던져버리고 TV에 집중하기로 했고, 오락 프로그램들이나 드라마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드라마는 도저히 안 되겠어서 포기했다.) 두 달 정도를 그렇게 하고 났더니 그제야 온전히 TV에 집중하며 꺄르륵 댈 수 있었다. 그렇게 좀 가볍게 살아보기로 했다. 다른 사람들처럼.
다시 글을 쓰기로 하다
그렇게 일 년 정도를 살아봤더니 몸이 불편했다.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그냥 먹으면 체한 거 같고, 감정도 들쑥날쑥하고, 재밌게 놀다가도 갑자기 휙 식어버리기 일수였다. 사랑도 일도 그냥 하루하루 지나가는 이벤트로 느껴졌다. 그러다가 알파고와 이세돌의 세기의 대결이 펼쳐지고, 인공지능이라는 화두가 유행이 되었다. 지금도 같이 만나 술 마시는 형님들 중 두 분이 인공지능 전공 박사신데, 그렇게 우리는 자연스럽게 술 마시다가 스터디 그룹을 만들게 되어 Machine Learning과 Deep Learning부터 시작해서 인공지능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랬더니 몸이 다시 나아지더라. 매일 아침에 일어날 때 즐겁고, 오늘 하루의 업무가 즐겁고, 업무 끝나고 공부할 생각에 즐거워졌다. 그런 과정을 거치며 확신했다. 사람은 생긴 대로 살아야 함을.
누군가는 공부하지 않고 업에 익숙해지는 방식으로 살아야 편한 것이고, 필자 같은 사람은 공부하고 열정 쏟으면서 사는 게 자신에게 맞는 방식이라는 점을 굳이 큰 변곡점들을 거치며, 빙빙 돌아 깨닫게 되었다. ‘나는 나 생긴 대로 살아야지’ 다짐했고, 그렇게 살면 행복해질 거라 확신했다. 달라진 부분이 있다면 ‘이제 좀 적당히 하자, 살살하자’로 스탠스가 바뀐 정도였다. 예전처럼 필자가 편한 방식대로 살되 너무 지치지 않게 천천히 하자로 바뀌었다.
“생긴 대로 살아라”는 사실 한의학의 기조 철학인데,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장기의 크기나 피의 체질이 다르니 생긴 대로 살아야 건강하다는 의미로 필자는 이해하고 있다. 그리고 나이가 들수록 한의학의 이런 철학들이 더 깊이 마음에 와닿고 동의가 된다.
글쓰기를 다시 시작하려는 시도와 방향 설정
그래서 “블로그를 다시 정리하자” 라고 마음먹은 건 2017년이었다.
그런데 쉽사리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뭐든 결정을 내렸으면 일단 행동부터 하고 보던 필자였는데, 몸이 잘 움직이지 않았다. ‘내가 그동안 너무 놀았나’ 싶은 마음에 마음을 다잡고 행동 패턴을 고쳐보기도 했지만 예전처럼 잘 되지 않았다. 굳이 천천히 살려고 마음을 먹어서 그 다짐이 행동으로 투영된 것일지 알 수 없었지만, 명백히 확신한 것은 머릿속에 아직 해결했으면 하는 부분들이 필자가 인식하지 못한 채 남아 있음이었다. 그리고 그 껄적지근한 게 무엇인지 찾기 시작했다.
수많은 생각과 고민을 해 봤다. 그러고 나서 깨달은 것. 필자는 블로그를 다시 시작하려는 목적이 불분명했었다. 그저 ‘예전에 했던 일이니 다시 시작해보자’ 정도로는 스스로에게 명확한 명분과 동기부여를 제공하지 못했다. 나이가 들어서일 수도 있고, 열정의 불길이 조금 사그라들어서일 수도 있다. 또다시 오랜 시간 동안 자신에게 시간을 주고 고민했다. 그리고 마침내 내린 결론. 필자가 블로그를 다시 하게 된다면 “나는 과연 무엇인가, 나는 누구이고, 무엇에 관심을 가지며, 무엇을 하고 싶은가”에 대한 정체성을 규정하는 방식으로 글을 써내고 싶었다. 그게, 필자가 설정한 방향이었다.
그렇게 긴 고민 끝에 2020년이 되어서야 블로그의 형태를 결정했고, 2021년이 되어서야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행복해지기 위한 글쓰기
청년의 시기에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하는 고민의 방식은 인생이라는 이름의 테이블 위를 정신없이 뛰어다니게 했다. 존재하지 않는 그 어딘가를 계속 찾았던 게 아닌가 싶다. 안전하고, 젖과 꿀이 흐르는 정착지를 찾으면 반드시 내가 차지하리라는 듯이 공격적으로 인생을 살아왔다. 당연히 그런 건 없다. 중년이 된 후, 그런 건 없다는 걸 잘 알기에 조금 더 느긋해진 몸과 마음으로, 덜 공격적으로, 아니, 무척 평화로운 방식으로 자아 속의 또 다른 자아들과 이야기를 나누어 무던하게 필자 스스로의 인생을 위한 결론을 끄집어내었다.
인생은 누구나 행복하려고 사는 것이다. 인생은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며, 그 또한 행복을 찾아 떠나는 길이기도 하다. 어디로 가야 무엇을 찾을 수 있는지 아는 사람은 없다. 그 여행에 방향은 정해져 있지 않다. 어디로 흐를지 모르는 구름처럼, 방향도 정하지 않고, 발길이 닿는 대로 걸어가는 나그네처럼,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걷고 또 걷는 것이 옳다. 세상 모든 일은 우연히 일어나고 우연히 나와 조우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만나는 좋은 사람들도, 나쁜 사람들도, 모두 흘러가는 강물처럼 빠르게 지나가버려 잡아보려 해도 잡히지 않는다. 그런 과정들을 보고 겪으면서 자기 스스로와 친해지고, 자기를 잘 알아가는 것이 바로 행복을 찾는 인생의 여정이라 생각한다.
필자는 앞으로 필자에게 주어질 시간과 남은 인생에서 필자가 가치 있게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해봤다.
생각해보니 청년 시절 불타오르던 열망은 언제나 스스로 행동하게 하고, 공부하게 했다. 이게 필자에게 남겨진 유산이었다. 남들은 중년이 되면 머리도 나빠진다는데, 머리가 나빠지기는커녕 필자의 열정은 아직 잘만 타오르고 있다. 돌아보면 그렇게 스스로를 괴롭히던 열망으로 해온 일들이 참 재미있었다. 사람들을 만나고, 공부하고, 도전하고, 부딪히고, 실패와 성공도 경험하면서 살아온 날들을 떠올리니 문득 입술 사이로 피식하는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땐 괴롭고 힘들었는데, 돌아보니 재밌던 기억이었다. 무척.
그래서, 아무도 보지 않더라도, 아니, 누군가에게는 또 간절히 필요할지 모르는 필자의 경험들을 정리해보자 싶었다. 그리고 나이가 들며 천천히 잊혀져갈 필자 인생의 필모그래피를 정리하면서 스스로를 정돈하고 다잡아 너무 못난 어른이 되지 말자는 생각이 들었다. 글을 쓰고, 내가 해온 일들을 정리하는 것. 내가 이루었던 일들과 공부했던 것들을 정리하는 것. 그렇게 다시 블로그에 글쓰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References
- 이미지 출처 : 교보문고 - 생긴대로 살아야 건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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