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배움

이번 포스팅은 “배움” 카테고리를 런칭하며 떠오른 감상을 기록했습니다.

나의 배움

배움에 대한 글들을 써 내려가다가 문득 그 모든 글들에 공통되게 어필해야 하는 점이 있다고 느껴져서 글을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글을 써 내려가다보니 막상 필자의 개똥(개인적인 똥통) 철학 이야기라 ‘배움’ 카테고리에 남겨 놓기도 적절치 않았다. 그래서 필자 소개 쪽으로 카테고리를 변경했다.

이번 페이지에서는 너무나도 개인적이고 쓸데 없는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공부가 취미

“공부가 취미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고나면 놀라는 사람, 놀리는 사람, 신기해 하는 사람, 안 믿는 사람 등 여러 종류의 반응을 보곤한다. 가끔은 어이 없다는 듯, 누군가의 새어나온 웃음이 귀에 들리기도 한다. 뭐, 남들이야 어떻게 반응하던 상관 없다. 필자는 공부가 취미다.

어느 정도 나이가 들고나서부터 계속 공부가 취미였다. 다른 취미가 없어서 그런 건 아니다. 취미 자체를 공부로 한다. 필자의 취미에 대해서는 인생의 취미들에 따로 적어두었다.


‘나의 공부함’을 재정의함

알상적으로 공부라는 건 지루하고 하기 싫은 일이 되어야 정상인데 필자에게는 그렇지 않다. 「’공부’라는 행위에 대한 정의」를 스스로 다시 내렸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이미 다른 훌륭한 분들이 정의해 두었는데 이제서야 깨달은 거다.

‘공부함’을 재정의하기 전까지는 필자도 공부를 정말 하기 싫었다. 공부라는 건 누군가 내 지적 능력과 노력을 평가하기 위해 강요하는 수단으로써 어릴적부터 늘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행위였고, 그런 기분들이 나 스스로를 ‘공부하기 싫어하는 사람’으로 만들어온 거 같다.

20대의 어느 무료한 저녁에 필자는 ‘왜 인간은 공부라는 걸 하고 평가를 받는가’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봤다. 딱히 이런 것에 대한 기록은 존재하지 않기에 상상력만으로 제법 그럴듯한 유추를 해보았다. 아마도 시작은 먼 옛날 지식 체계를 요약하고 다음 세대로 전달하는 과정에서 다음 세대의 아이가 얼마나 빨리, 그리고 훌륭한 수준으로 생존에 필요한 지식을 습득했는 지를 ‘가르치는 사람 입장에서 평가’하기 위해 시작되지 않았을까싶다. 더 효율적으로 지식을 전달하기 위한 방법과 더 효율적으로 평가하기 위한 방법이 동시에 발전했을 거고, 현명한 누군가가 만든 방법들이 덜 현명하거나 관심이 적은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과정에서 그 ‘공부’라는 것은 지루하고 강제적인 평가 수단이 되었지 싶다.

필자는 원론적으로 돌아가 고민하고 싶었다. 다른 행성에서는 어떤 지 모르겠으나, 지구에서 발현한 움직이는 단백질들은 자신의 개체를 복제하여 널리 퍼뜨리려는 습성이 가장 기본적인 작용이며, 이런 작용이 되물림되어 유전체 내에 지식으로 전달된다. 전달된 내용은 각 개체의 습성으로 나타나고, 또 발전/퇴보 하더나 돌연변이가 되어 각 유기체의 유전정보 안에 프로그래밍 되어 다음 세대로 전달된다. 이런 유전 정보들은 대부분 생존에 반드시 필요한 필수 정보들을 위주로 한다. 그런데 인간으로 진화한 생명체는 자신의 생존 본능을 넘어선 효율성을 지식 체계로 전달하기 시작했다. 언어와 문자를 이용한 지식의 전달은 다른 생물은 따라 올 수 없을 만큼 고등한 지식 체계를 널리 전파하는데 사용되었다. 그러니, 공부라는 건 결국 ‘생존하기 위한 수준을 효율적으로 개선한 지식 체계’ 정도로 표현하면 가장 원론적인 표현이 아닐까 싶었다. 몇 주에 걸친 이런 종류의 상상력을 발휘하고 나서 이제 본격적으로 ‘필자에게 필요한 공부’에 대해 고민했다. 공부가 결국 생존하기 위한 도구라면 ‘생존함’에 대해 고민해야 했다.

인간으로 이 시간 안에 존재하면서 생존함의 이유를 찾으려면 수 많은 과거 사상적 천재들의 철학들을 데려와 이야기해야 옳겠다. 인간이 왜 인간인가?에 대한 대답은 우리가 우주로 나아가 우리와 닮은 초기 진화-생명체를 찾기 전까지는 연구할 수 없겠지만, 예전 훌륭한 생각의 정리자들 덕에 한 가지 힌트는 얻을 수 있었다. 바로 그 결론은 ‘인간답게 존재하기, 인간으로 살아가기’가 아닐까 싶다. 종교의 성인들 혹은 동서양의 철학자들 모두 그런 이야기들을 했다고 지금까지 전해지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면 얼추 맞지 않을까 싶다. ‘성인’과 ‘철학자’들은 ‘너 별로 인간 아니다, 먼저 인간이 되라.’ 그런게 공부였다.

그래서 필자는 ‘제대로된 인간이 되기 위해, 제대로된 사람으로 살기 위해 공부하고 정리’ 함을 인생의 화두로 삼았다. 그리고 이에 익숙해지기 위해 평가받지 않겠다는 태도로 지식을 탐구했다. 잘 할 수 있으면 좋고, 아니면 그도 그렇게 두어도 된다. 평가 받을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업무 관련된 내용은 끊임 없이 평가 받는 다는 걸 알아서 평가 받을 수 있도록 노력했다.)

그냥 ‘호기심’에서부터 시작되는 순수한 지적인 탐구. 평가 받지 않는 공부는 인생의 여러가지를 받아들일 수 있는 열린 사고를 가질 수 있게 해주었다. 공부가 점점 더 재밋어졌다. 그제서야 확실히 알았다. 어릴때부터도 호기심은 꽤 많은 편이었지만, 평가 받는 걸 싫어해서 공부가 하기 싫었던 거다. 이런 긴 고민을 마치고 나니 나만 평가 받기 싫어하는게 아니고 누구나 그런게 아닐까 생각한다. 남에게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고 돈 버는 일이 아니라면 평가 받을 필요가 없는 것이고, 누군가 돈을 내고 어떤 가치를 구매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누군가를 평가하는 행위 자체가 불필요함을 깨달았다. 아니, 정확히는 불필요하게 남을 쉽게 평가하는게 굉장한 폭력이란걸 깨달았다고 하는게 더 맞는 표현이겠다. (이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내면 또 한 바닥이므로 다음 기회에…)

공부를 하지 않으면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 지 모르게된다. 필자는 이런 상태를 ‘무지에 대한 무지’라 표현한다. 그리고 공부를 하다보면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 지를 어렴풋이 깨닫기 시작한다. 자신이 모르는 것들을 부정하거나, 자신이 안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정리하다보면 어느 새인가 자신이 아는 범위와 모르는 범위가 조금씩 명확해진다. 그 과정에서 자기 스스로 평가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타인에 의한 평가에 영향을 받는 경우가 더 많다. 어쨌든 필자 입장에서는 타인에 의한 평가는 왠지 싫다. 그래서 스스로 평가하되, 남에게 평가 받지 않는 공부를 하려고 애써왔다. 필자는 제대로된 사람이 되기 위한 공부를 하는 것이지, 평가 받는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고 믿으며…


그래서 왜 배움을 하는 것인가?

2018년 초 즈음… 어느 순간 “근데 나 왜 이렇게 공부하는거지?”라는 물음표가 필자의 생각을 스쳐갔다. 그냥 하다보니까 계속 하게 된건데 어느 순간 그걸 왜 했는지 기억이 안나는거다. 그래서 놀기 시작했다. 늘 공부하던 사람이 놀기 시작하려니 노는 것도 잘 안되더라. 약 2주간 실패를 거듭했다. TV를 켜고도 TV에 나오는 내용들을 스마트폰에서 찾아 공부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선, 퇴근과 함께 전화기를 방에 두고 TV를 보거나 나가서 운동을 하며 정보, 책, 검색과 차단된 삶을 살아 보려 했다. 그렇게 3주 정도 지나니 정말 즐거운 마음으로 놀 수 있게 되는거 같더라.

그렇게 1년 정도를 놀다가 보니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그 동안 아팠는데 못 느끼고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너무 격하게 놀아제꼈나? 이런 저런 고민들을 해보고, 또 이런 저런 방편들을 모두 시도해봤으나 계속 아팠다. 필자의 결론은 “사람이 생긴대로 살아야 하는데, 생긴대로 안 살아서 아픈 것”이라고 결론을 내리고 다시 공부를 하며 살아야 겠다 싶었다. 근데 이게… 또 한 참 놀다가 다시 공부를 시작하려니 잘 되지 않았다. 노력을 해도 딴 짓하는게 너무 또 버릇이 되어 버렸다. 처음에 놀기 시작할 때도 잘 안되더니, 이제 또 공부하려니 잘 되지 않았다. 그렇게 1년을 “해야지, 해야지”만 다짐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작심삼일을 몇 번, 책을 읽다 멈추다를 몇 번, 그렇게 여러 시도들을 실패했다. 그 2년여 되는 시간 동안 만나야만 하는 사람들도 너무 많아졌고, 스스로 무언가를 쌓아 올리기 보다 남이 쌓아 올리는거에 평가질이나 띡 해 대는, 남들에게서 배운 행동들이 훨씬 쉽고 편안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서 문득 한국의 교육헌장 내용이 새삼스레 다가왔다.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정신,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하라.

그래, 필자가 공부를 취미 생활로 가졌던 이유 중 하나는 필자가 이 업을 시작할 때 그 누구도 “QA란 무엇인가? Testing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인터넷에 지금처럼 수 많은 자료들이 올라와 있지도 않았다. 그렇게 외국에서 책을 조달하고 스터디를 하는 과정에서 QA와 Tester들을 위한 커뮤니티도 설립하고 운영했다. 그 모든게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하라는 정신을 받들어 배움을 행하는 과정이었다.

필자는 공부가 취미인게 맞다. 필자는 공부하고 나서 아주 작은 지식이라도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걸 즐겨했다. 하지만 그렇게 공부한 내용을 스터디 그룹이나 발표할 기회를 잡아 나누는 수준이었지, 지금까지는 평가 받는 걸 싫어해서 딱히 어딘가에 사람들이 보도록 글을 남기거나 필자가 아는 것들을 증명하려 하지 않았다. 그랬더니 ‘지금 내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 지’를 모르는 이상한 상태가 되었다. 그래서 블로그에 필자가 무엇을 알고, 어디까지 알고 있는 지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글을 쓰면서 생각한다. 어쩌면 지금 필자가 블로그에 공부한 이 내용들을 써 내려가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필자를 평가하는 도구, 잣대로 쓰일 지도 모를 일이다. 누군가의 블로그에 와서 긴 시간 공들여 쓴 글을 읽으며 남을 평가하기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거라, 그런 이들에게 부탁컨데… 필자를 평가했으면 표현하지 마시고 그냥 본인의 마음 속에 잘 간직하시길 바란다. 칭찬이라면 듣기 좋겠지만, 아직 덜 자란 마음은 그런 표현에 반응 하느라 조금씩 게을러 질거고, 악평이라면 별로 궁금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냥 좋은 평가를 했다면 필자와 술이나 한 잔 하며 인생을 논하자. 필자에게는 이런 공부란 인생을 배우는 과정일 뿐이니. 그런게 필자의 배움이다.

마지막 순간이 올 때까지 열심히 필자의 여러가지 지식들에 대해 정리하고, 다듬어 공부한 내용들을 적어 보려 블로그도 다시 시작했으니, 지금부터는 꾸준히, 천천히, 차분히 진행하면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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